일상다반사

대중교통 이용, 휠체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빠를까 흰지팡이를 사용하는 이들이 빠를까?

얼음조각 2015. 9. 9. 23:02

퇴근길이었다. 장콜 잡을 타이밍을 놓쳤고 그래서 버스를 타고 퇴근하기로 했다. 6시가 지나 사무실을 나섰고 20분쯤 걸어 내가 탈 버스가 다니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어둑어둑해진 시간이었다. 


정류장에 막 도착했을 즈음, 버스 몇 대가 정류장에 있었다. 막 출발들을 하려는 찬라였고 순간 저 버스들 가운데 내가 탈 버스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확인하기에 버스는 여러 대였고 어둑어둑한 상황에서 출발하려는 버스 곁으로 뛰어가기는 부담스러웠다. 위했했으니까... 버스들이 출발한 뒤 앱을 실행해 정류장을 검색했다. 역시 방금 출발한 버스들 가운데 내가 탈 버스도 끼어 있었다.


- 첫 번째 버스였다.


한 두번 겪는 일은 아니었던지라 정류장 의자에 앉아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이어폰을 끼고 기사들을 읽으며서도 수시로 버스 위치를 체크했다. 종점에서 서너 코스밖에 떨어지지 않은 정류장에 앉아 있었던 상황이라 ''운행대기' 표시가 잦은 곳이었다. 버스 한 대가 도착했다. 정류장에는 나 뿐이었고 버스 앱에는 내가 탈 버스는 '운행대기' 상태로 표시되고 있었다. 멈칫거리며 번호를 확인할까 했지만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버스는 출발했다. 다시 앱을 확인해봤고 떠난 버스가 내가 탈 두 번째 놓쳐버린 버스임을 알 수 있었다. 


- 두 번째 버스였다.


분명 '운행대기'였던 버스였는데... 늦은 시간이었다. 저녁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 이번에도 놓칠 순 없다고 생각했고 앱 확인 뿐만 아니라 버스가 오면 일단 무조건 붙어서 번호를 확인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앱에서 내가 탈 버스가 오고 있다고 확인 되었고 타이밍 좋게 다른 버스 한 대가 도착했던 위험한(?) 순간을 넘긴 뒤 겨우 집에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장콜을 탈껄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고 내 시력이 조금만 좋았거나 내가 조금만 적극적으로 버스 번호를 확인했다면 하는 아쉬움과 스스로에 대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휠체어를 사용하는 저상버스를 필요로 하는 이들과 개별 버스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한 시스템 지원이 필요한 흰지팡이를 사용하는 이들 가운데 누가 더 빨리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을까?


페이스북에 넋두리와 함께 이 내용을 올렸고 시력이 전혀 없는 후배가 댓글을 달았다. 현재 운행 중인 저상버스가 있는 반면 시각장애인이 번호 확인이 가능한 버스는 단 1대도 없으니 저상버스 승이라는 내용이었다.


얼마 전,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들이 장콜을 이용하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이 이용이 어렵다는 요지의 불편함을 표하는 밴드 글이 생각났다. 100대가 넘는 저상버스가 돌아다니고 있는 지금, 시각장애인이 혼자 탈 수 있는 시내버스는 단 1대도 없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조금은 불편한 마음으로 묻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대중교통인 시내버스에서 배제된 이들끼리 다시금 서로를 갈라놓으며 편을 갈라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잠시 버스에 앉아 숨을 돌리고 생각을 갈아앉히니 그 생각 역시나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불편함을 느껴야 할 이들은 2시간 넘게 기다리다 끝내 약속 시간이 지나버려 예정된 일을 망쳐버린 누군가가 아니었다. 매일매일 아무렇지 않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을 향해 말해야 했다.


"당신은 불편하지 않으세요? 당신은 불편해질 것 같지 않으세요?"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흰지팡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는 그 버스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한 사람들에게 말했어야 했다. 장콜에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약속도 취소하고 귀한 시간도 버리게 됐다는 자신의 불합리한 현실을 꺼내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변해야 하는 것은 '시각장애인 때문에 휠체어를 사용하는 내가 장콜을 못타는건 불합리하다.'라고 느끼는 이들이 아니다.


반감을 가진 이들은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해볼 여지가 있지만 무감한 이들은 당장 떠오르는 답이 없다. 


언젠가 꺼내놓을 투쟁의 에너지, 분노 한 조각을 가슴에 차분히 갈무리하게 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