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벌어지는 일이라고 아무렇지 않을 순 없다.
편도가 부어 미루던 한의원에 가기로 했다. 며칠을 버텼지만 좋아질 기미가 없어 더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콜을 불렀고 차가 도착한 뒤 기사님에게 전화를 받았다. 택시 도착했다는 말이었는데 정확히 '택시'라고 표현한 것과 다소 퉁명스런 말투라는 게 기억에 남았다. 차를 타니 어느 길로 갈지를 물어봤고 함께 탄 풍경이 기억을 더듬어 경로를 얘기해줬다. 그러나 차가 밀리는 길이라는 요지의 시큰둥한 반응이 되돌아왔다. 그렇게 잘 알면 뭐하러 물어보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자신이 아는 경로를 제시하며 그 길로 가도 괜찮겠냐고 묻는 게 훨씬 좋았겠다 싶었다.
- 어느 길로 갈까요?
- 00쪽으로 해서 가도 괜찮으세요?
질문을 받는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어느 쪽이 더 편하게 느껴질까?
차에서 내릴 때 결제 오류가 있어 삐끗했다. 종종 벌어지는 통신 장애 때문이었다. 물론 그 문제는 기사의 책임은 아니다. 다만 카드를 받기 위해 문을 열고 기다리는 내게 에어컨을 켜놓았으니 문을 닫으라고 했던 그의 말이 불편한 기억으로 남았다. 설명하듯 말하면 좋았을텐데...
거래내역을 출력할 일이 있어 은행에 갔다. 복지카드를 신분증 대신 제시했고 거래 내력을 출력하러 왔다는 용건을 말했다. 역시나 늘 그런 것처럼 종이와 볼팬을 내게 내밀었다. 곁에 있던 풍경이 이름까지는 대필을 하고 서명만 내가 해도 되는지 물었지만 직원은 안 된다고 했다. 내 글씨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는 굳이 글씨를 쓰고 싶지 않았다. 더불어 내가 활동보조인과 함께 동행했다면 이 직원은 어떻게 하려고 이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풍경이 강하게 항의해서 내가 서명만 하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다.
두어장 쯤 서류를 더 내밀었고 서명할 곳을 가리켰다. 그 때 난 알 수 있었다. 이들에게 장애인 고객 응대 메뉴얼 같은 게 없다는 것을... 서명을 한 뒤 내가 물었다.
- 근데 제가 무슨 서명을 한 건가요?
그제서야 직원은 내가 서명한 서류가 무엇이었는지 대강 설명해주었다.
- 장애인 고객 응대 메뉴얼이 없는 거죠?
확인을 위해 다시 물었고 직원은 애매하게 그렇다는 것을 표현했다. 진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부러 지점장의 이름을 물어봤다. 그 직원이 지점장의 이름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
장콜을 타서 가는 길에 대한 질문을 받는 건 매일 있는 일이다. 가끔씩 불친절하거나 운전을 거칠게 하는 기사를 만나는 일도 있다.
은행에서 단 한번도 서명을 요구 받지 않은 적은 없다. 이름과 서명만은 본인이 꼭 적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 물론 서명을 도장으로 대체하는 것을 제안할 때도 있지만 그건 내가 서명이 불편하다는 의사를 밝힌 뒤의 이야기다.
아마도 어느 길로 갈 것인지 묻는 것은 기사 메뉴얼에 있는 절차일 것이다.
그리고 종이와 팬을 내밀며 작성해줄 것을 요구하는 일은 책임을 가리기 위해 반드시 받아야 하는 서류였을 것이다.
다른 표현 다른 방식을 그들은 굳이 찾거나 생각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불편하지도 문제가 되지도 않는 사소한 일이니까...
- 매일 벌어지는 일이라고 아무렇지 않을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