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한 켠/수줍은 내 노트

욕망 그리고 부끄러움

얼음조각 2016. 8. 26. 12:07

앞서 가던 이들의 등을 보았을 땐 모르고 있었다.

그네들도 부담스럽고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앞서 가던 이들과 함께 걷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늘 웃으며 누군가를 마주했던 이들이 실은 가슴에 한 덩이씩 묵직한 책임감을 매달고 있었다는 것을...


앞서 가던 이들처럼 되고 싶다고 욕망했던 시간엔

등을 보이고 걷는 이들만 있으면 언제라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게 됐을 때에는 

언제든 내가 쥔 것들을 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작은 일상을 하나씩 채우며

조금씩 내 통장에 '월급'이란 이름의 숫자가 찍히며

그렇게 만들고 그 숫자들로 내 욕망들을 구매하는 사이에


어쩌면 난 내 일상 만큼 사소해지고 

내가 산 욕망들 만큼 소심해졌는지 모른다.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통장 위 숫자들은

'전망과 계획'을 찾으며 조금씩 버릴 시간을 미루게 되었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고 있는 이들과

그 옛날 내가 그랬 듯 내 등을 보고 있을 누군가들 앞에


부끄러운 시간이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

실은 가슴에 매단 무거운 책임감을 벗어놓고 

사소한 욕망들을 구매하며 거리낌 없게 살고싶다는 표현이라면...


부끄러움을 느낄 만큼은 아직 두껍지 않은 얼굴로

동무들을 바라보며 돌아서야겠다. 


조금 더 부끄러움을 크게 느끼고

조금 덜 욕망을 구매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도록...


어쩌면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평범하게 사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로서 사는 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깨를 마주한 이들과 내 등을 바라볼 누군가 앞에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덜 부끄럽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