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KT <마음을 담다> 캠페인은 왜 불편할까?

얼음조각 2020. 4. 15. 11:02

https://www.youtube.com/watch?v=A2YSy-9LOmA  

(광고) 제 이름은 김소희 입니다 [마음을 담다 KT] (풀스토리)

 

잘 만들어진 광고다.

- 좋은 광고라는 게 아니다. 농인의 의사소통 문제를 '음성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로 생각하는 통념을 거스르지 않는 광고라는 거다.
-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자의 의사를 음성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것처럼 번거로울 수 있는 사용 장면은 빼고 만들어진 광고라는 거다.
- '기술'이 장애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을 것처럼 환상을 심어준 광고라는 거다.


- 통념을 거스르지 않는 광고

농인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경험하는 이유가 '자기만의 목소리' 그러니까 '음색'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까? 광고에 나오는 소희 씨는 수어를 사용해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한다. 만약, 소희 씨와 다른 가족들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경험했다면 그건 '음성 언어'와 '수어'라는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음색'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음색 : 음의 높낮이가 같아도 사람이나 악기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소리의 특질이나 맵시

광고에서 KT가 한 일은 가족들의 '목소리'와 소희 씨의 '구강 구조'를 분석해서 소희 씨만의 '음색'을 만들어준 일이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하고 싶은 건, '음색'을 만들어준다고 의사소통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버스나 지하철 안내 방송부터 ARS와 ATM까지 상당히 자연스러운 발음의 만들어진 음색은 이미 존재한다.

- 번거로울 수 있는 사용 장면은 빼고 만들어진 광고

소희 씨가 엄마와 언니 그리고 두 자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방식은 '녹화된 영상'을 가족들이 함께 보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제한된 광고 시간 때문에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일 수 있다. 하지만, 메시지를 입력하고 그걸 재생해서 들려주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 사용 장면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이미 찍은 영상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은 광고의 3분 20초에 잠시 나온다.

3분 20초, "수빈아 앞으로 하고 싶은 말 들려줄게. 사랑해."

그 장면에서 문자가 입력된 휴대폰 화면이 나오고 화면을 터치한 뒤 음성이 재생되는 모습이 보인다. 먼저 문자를 쓰고 다음에 버튼을 눌러 음성 언어로 재생하는 게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긴 어렵다. 기자회견이나 발표 수업처럼 미리 원고를 준비해 말하는 상황이라면 다르겠지만, 대화를 주고받는 일상에서는 어색할 수밖에 없다. 잠깐의 침묵도 대화할 땐 어색함을 만들어내는데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입력하는 걸 기다려야 한다면….

휴대폰이나 통역기를 사용해서 다소 어색하더라도 의사소통을 하는 일이 의미가 없다는 거냐? 의미 있다. 그런데 왜 '음성'만 재생되어야 하는가? 다른 가족의 말을 소희 씨가 이해해야 하고, 소희 씨의 수어를 기술의 힘을 빌어서라도 음성언어도 전달해야 하는 건 당연한가? 구글과 파파고 등 번역 앱을 떠올려 보자. 한국어를 입력하면 영어로, 영어를 입력하면 한국어로 번역되어 음성으로 재생한다. 한글을 입력해서 음성 언어로 재생하게 지원하는 건, 발음이 썩 좋지 않으니까 영어 문장을 입력해서 매끄럽게 발음하도록 만드는 '앵무새 같은 기기'일 뿐이다. 영어 문장을 쓸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마치 Writing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Speaking만 어려움이 있는 누군가를 위해 '발음 좋게 말하는 기기'를 만든 셈이다. 그러면서 유창한 대사는 미리 녹화해서 보여주고, 간단한 일상 회화 한 마디는 단말기에 입력해서 보여준 거다. 실사용에 있어 진짜 중요한 문제는 가린 거다.

왜? 해결할 수 없으니까….

- '기술'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광고

분명 기술은 일상에서 장애인이 경험하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이폰으로 책을 읽고 맥북으로 문서를 만드는 내가 10년 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떠올리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기술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지금도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여느 사람들이 서점 가서 쉽게 책 사보는 것처럼 읽을 수 없긴 마찬가지니까.

농인의 의사소통 문제를 어떤 기술과 단말기만으로 해결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단말기라도 대화를 나눌 때 그걸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는 문화가 여전하다면, 의사소통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을 수밖에….

나는, 내 시력이 좋아지는 것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으로 웹 사이트나 인쇄물을 화면 읽기 프로그램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훨씬 빠를 거로 생각한다. 장애인이 줄기 세포와 기가 지니 같은 ‘기술’에 목매지 않아도 되는 현실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들어진 법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하고 부족한 점을 법 개정으로 보완하는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게 국회 현실이라는 것도 부정하기 힘들다. 어떤 기술 개발에 예산을 투입해서 개발 시간을 앞당길 것인가도 여의도에 모인 양반들 수준에 달린 거 아닌가… 법을 보완하고 잘 지켜지도록 심의하고 따져 묻는 게 국회의 역할 아닌가…

하필 오늘이 국회의원 선거 날이다. 앞서가지는 못해도 정치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기라도 하면 좋겠다. 4년 뒤에는 지니가 없어도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 힘있게 지켜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거짓말 하는 과학자와 노동 탄압을 가하는 기업에 목을 맬 순 없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