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2021. 6. 13. 10:09

낯선 공간에서의 새로운 활력

오전 9시, 정기권을 결제한 스터디 카페 내 자리. 좌석 번호 51번, 벽을 등지고 가장 구석에 있는 위치다. 전사하느라 타이핑을 좀 시끄럽게 하는 편이라 고른 위치이고, 다른 사람이 내 노트북 모니터를 볼 수 없는 자리이기도 하다. 일요일 아침, 이 자리에 앉기 위해 집을 나섰다. 정기권을 끊지 않았다면 집에서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뒹굴뒹굴했을 시간이지만, 결제한 금액만큼 자리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동기가 되어 집을 나올 수 있었다.

삑 소리도 못 내는 키오스크에서 4주 동안 내 자리가 된 좌석 번호를 찍고 휴대폰 번호를 입력한 뒤 들어왔다. 이곳은 크게 세 공간으로 나눠 운영되는데 다수가 모여 이용할 수 있는 스터디룸과 노트북으로 타이핑하며 쓸 수 있는 내 자리가 위치한 오픈된 공간 그리고 기침만 해도 눈총이 쏟아질 것 같은 조용한 공간이 있다.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가 무료인 커피 머신이 있고, 정수기가 있고, 복합기와 노트북이 한 대씩 놓여 있다.

문을 열고 들어오니 아무도 없다. 일요일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시간이 이르기 때문인지 알 순 없지만, 아무도 없는 공간에 노트북을 펼치고 앉아 막 뽑은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미생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장백기가 어린 시절 매일 아침 가게 앞을 물청소하시던 문방구 아저씨를 떠올리는 장면이다. 이 시간, 이 공간이 좋아질 거 같다. 잔잔히 흐르는 음악, 편히 마실 수 있는 커피, 이런 건 집에도 있다. 집에 없는 건 다른 존재들이다. 이곳이 좋은 이유는 누군가와 한 공간에 같이 있다는, ‘사람’을 의식하게 된다는 감각 때문이다. 아직 아무도 없는 이 시간이 적당히 설레는 이유는 반드시 누군가는 이 공간에 함께 있게 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일요일이라 아무도 안 올지도 모르지만, 집에 있었다면 0%인 누군가와 마주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적어도 이 공간에선 0%가 아니니까… 집에서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건, 혼자라는 감각이 압도했기 때문일까? 그 압박감에서 벗어나려 침대 속으로 도망치기 때문일까? 정확히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새로운 공간에서 다른 감각이 느껴지긴 한다. 조금 더 가볍게 뭔가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거면 됐다.

차분히 오늘 할 일을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