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2021. 6. 13. 10:09

낯선 공간에서의 새로운 활력

오전 9시, 정기권을 결제한 스터디 카페 내 자리. 좌석 번호 51번, 벽을 등지고 가장 구석에 있는 위치다. 전사하느라 타이핑을 좀 시끄럽게 하는 편이라 고른 위치이고, 다른 사람이 내 노트북 모니터를 볼 수 없는 자리이기도 하다. 일요일 아침, 이 자리에 앉기 위해 집을 나섰다. 정기권을 끊지 않았다면 집에서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뒹굴뒹굴했을 시간이지만, 결제한 금액만큼 자리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동기가 되어 집을 나올 수 있었다.

삑 소리도 못 내는 키오스크에서 4주 동안 내 자리가 된 좌석 번호를 찍고 휴대폰 번호를 입력한 뒤 들어왔다. 이곳은 크게 세 공간으로 나눠 운영되는데 다수가 모여 이용할 수 있는 스터디룸과 노트북으로 타이핑하며 쓸 수 있는 내 자리가 위치한 오픈된 공간 그리고 기침만 해도 눈총이 쏟아질 것 같은 조용한 공간이 있다.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가 무료인 커피 머신이 있고, 정수기가 있고, 복합기와 노트북이 한 대씩 놓여 있다.

문을 열고 들어오니 아무도 없다. 일요일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시간이 이르기 때문인지 알 순 없지만, 아무도 없는 공간에 노트북을 펼치고 앉아 막 뽑은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미생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장백기가 어린 시절 매일 아침 가게 앞을 물청소하시던 문방구 아저씨를 떠올리는 장면이다. 이 시간, 이 공간이 좋아질 거 같다. 잔잔히 흐르는 음악, 편히 마실 수 있는 커피, 이런 건 집에도 있다. 집에 없는 건 다른 존재들이다. 이곳이 좋은 이유는 누군가와 한 공간에 같이 있다는, ‘사람’을 의식하게 된다는 감각 때문이다. 아직 아무도 없는 이 시간이 적당히 설레는 이유는 반드시 누군가는 이 공간에 함께 있게 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일요일이라 아무도 안 올지도 모르지만, 집에 있었다면 0%인 누군가와 마주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적어도 이 공간에선 0%가 아니니까… 집에서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건, 혼자라는 감각이 압도했기 때문일까? 그 압박감에서 벗어나려 침대 속으로 도망치기 때문일까? 정확히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새로운 공간에서 다른 감각이 느껴지긴 한다. 조금 더 가볍게 뭔가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거면 됐다.

차분히 오늘 할 일을 시작해보자.

일상다반사 2021. 6. 12. 15:42

키오스크 벽을 넘어 동네 스터디 카페 이용 시작

이사한 후 아쉬운 점은 근처에 도서관이 없다는 거였다. 가까운 곳에 여대가 있긴 하지만, 낯선 곳에 가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내게 여대 도서관 이용이 가능한지 찾아가 보는 일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곳곳에 생기고 있는 스터디 카페가 우리 동네에도 생겼다는 걸 알게 됐다.

지인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이동하던 중 ‘어, 여기 스터디 카페 생겼네요?’라는 말에 귀가 번쩍 뛰었다. 저녁을 먹고 함께 둘러보기로 했다. 몇 주 전, 회의 때문에 스터디 카페에 갔던 기억이 있어 출입할 때 키오스크를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 봐 좀 걱정이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입구에는 ‘삑’소리도 못 내는 키오스크가 버티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버튼이 좀 크다는 것과 대충 위치를 외우면 어찌어찌 쓸 수 있을 거 같다는 거였다…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니 노트북 챙겨서 일하러 오기 딱 좋게 생겼다. 커피도 무료로 제공되고 있었고, 사람도 많지 않아 딱 맞았다. 결정적으로 2시간에 3,000원이라는 이용료가 저렴하게 느껴졌다. 어제저녁, 어둑어둑한 시간에 스터디 카페 4시간짜리 이용권을 끊고 처음 이용해봤다. 몇 번 헛손질을 했지만, 그 덕에 대강 사용법을 익힐 수 있었다. 모처럼 책도 읽고 밀린 일도 하면서 10시가 넘은 시간 카페를 나왔다. 뿌듯한 느낌이었다. 정기 이용권이 있었는데 나올 때 9주짜리 정기 이용권을 끊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다음 날 결제하기로 하고 나왔다.

그렇게 밝은 오늘, 충전기와 노트북을 챙겨 스터디 카페에 다시 왔다. 정기 결제권을 끊으려 키오스크 앞에 섰고, 어제 익힌대로 결제를 시도했다. 어찌 된 일인지 예상하지 못한 팝업창이 하나 뜨면서 결제가 곧바로 되질 않았다. 무슨 팝업창인지 휴대폰 확대기 기능을 실행해서 안 맞는 초점 겨우겨우 맞춰가며 뭔가 서명하라는 걸 알았다. 왜 이런 창이 뜨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몇 번 더 같은 시도를 반복했다. 루틴대로 출력하는 키오스크가 다른 메시지를 내보낼 리 없었다. 결국 난 서명하고 결제하는 데 성공했고 그제야 결제 금액이 5만 원을 초과해서 서명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냈다. 마트에서도 5만 원 이상 결제하면 서명을 요구하니까…

키오스크에서 좌석을 선택하고 결제하기까지 과정을 위치와 함께 대강 외우는 일은 비교적 간단한 일이다. 화면 읽기 프로그램이 변변치 않았던 MS-DOS 운영 체제를 사용하던 시절 화면 읽기 프로그램이 실행되지도 않는 바이오스 설정 과정을 ‘삐’ 소리가 나면 키보드 키를 놓고 화살표를 아래로 몇 번 내린 다음 엔터 한 번 다시 화살표를 몇 번 움직이고 엔터 한 번 또 화살표를… 이런 식으로 복잡한 과정을 익히며 컴퓨터를 사용했던 때가 생각났다. 그에 비하면 ‘삑’소리도 못 내는 키오스크에서 정기권 결제하는 일 따위는 껌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해진 대로 움직이며 어찌어찌 실행하며 쓰는 나 같은 이에게 5만 원 넘었다고 예상에 없는 팝업창 따위가 뜨는 때면, “먼저 하세요.”를 거듭 말하며 등 뒤에 사람이 안 오나 신경을 곤두세우는, 익숙해질 수 없는 피곤하고 짜증스러운 일이 된다.

우선은 한 달이다. 4주, 매일 저녁과 주말을 이 스터디 카페에서 꼬박꼬박 보낼 수 있다면, 다음엔 8주를 결제할 거다. 익숙하고 편안하게 침대에 눕게 되는 집을 벗어나니 뭘 하긴 하게 된다. 4주 정기 이용권 결제한 돈은 뭐라도 하는 시간으로 남는 셈 치기로 한다. 모처럼 이렇게 글도 하나 썼으니 확실히 첫날부터 수지맞는 일인 셈인가…^^

일상다반사 2021. 3. 3. 22:42

드라마 스위트홈 인상 깊은 한마디

드라마 스위트홈 16화 중 은혁의 모습.

(은혁)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너무 확실하게 약속하는 건 진짜가 아닐 확률이 높지. / 스위트홈 16화 중.

일상다반사 2020. 11. 14. 15:47

욕망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

첫 번째 알람이 울린다. 눈은 떴지만, 이불 밖으로 나가진 않는다. 스마트폰을 켜고 웹서핑을 한다. 두 번째 알람이 울린다. 여전히 이불 밖으로 나가지는 않는다. 대신 웹서핑을 멈추고 도서 앱을 연다. 밀도 높은 글을 읽으니 더는 누워있을 수 없다. 라디오 앱을 실행하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들고 욕실에 간다.

 다음 주가 임용 시험인데 딸이 밤에 잠을 못 자며 마음고생 중이다. 그걸 아는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티 나지 않게 딸에게 힘이 되어주는 일. 1년 동안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한 딸이 시험에 합격해서 또래들과 같은 평범한 일상을 살았으면 좋겠다.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나는 문득 그 딸이 어떤 마음일까 생각했다. 정해진 날짜에 월급이 들어온다는 게 얼마나 안정감을 주는지 안다. 출퇴근하며 ‘직업’란에 ‘교육 공무원’이라고 체크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줄지 짐작된다. 임용을 준비하는 딸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잠시 그 안정감과 뿌듯한 자존심을 간절한 마음으로 욕망했다.

 커피와 케익 세트 쿠폰을 선물로 보내준다는 진행자의 말과 음악이 이어졌고, 나는 바디 워시 거품을 씻어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털었다. 그렇게 딸의 마음은 다시 내 마음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오래된 TV에 잔상이 맺히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스친 간절한 욕망은 채 가시지 않았는데 이걸 어떻게 해소할지 고민됐다. 진지하게 생각하면 욕망에 불이 붙어 수습할 수 없을 거 같고, 모른 척 지나가기엔 너무 생생해서 아까웠다. 글을 쓰기로 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단체 활동을 결의하며 출퇴근하는 삶을 사양했다. 종종 나는 그 선택을 달리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믿을 수 있는 이들과 의미 있는 일을 함께하는 곳에서 안정적으로 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사뭇 비장한 마음으로 결의했던 단체 활동은 불안정한 생활과 쉽지 않은 대학원 공부에 밀려 사소해졌다. 모처럼 가슴 뛰게 했던 대학원 진학은 주눅 들게 만드는 강의를 만나며 열기가 식었다. 나는, 대단한 사람도 뛰어난 사람도 아니라는 사실만 선명하게 알았다.

가능하면 오래 활동해온 단체 소속으로 나를 소개하지 않는다. 대학원에서 공부했다는 사실도 밝히지 않는다. 그렇게 단체와 학교를 빼고 나니 온전한 내가 남는다. 단체를 배경으로 삼을 때의 비장하고 멋져 보이는 이미지도, 대학원을 배경으로 삼았을 때의 꽤 똑똑할 것 같은 환상도 빼고 나면, 표현하기 불편한 내가 남는다. 이를테면, 40대 1인 가구 중증 장애 남성 같은 것.

그렇게 남아있고 싶지 않아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가끔 빛이 났고, 매일 지난하다. 멀리 보면 괴롭고 그래서 하루하루만 생각한다. 집어 들지 않은 선택지는 떠올리지 않으려 한다. 버린 선택지에는 ‘욕망’이라는 두 글자가 똑같이 적혀 있으니까…

뭔가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어떤 것을 욕망해야 생겨난다. 나는, 오늘을 넘어서는 현실적으로 내가 얻기 힘든 것을 바랄 때마다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욕심’은 부정적인 것임으로 버리는 것은 정당했다. 포기가 빠를수록 간절함도 덜 해갔다. 간절한 마음이 아니라 정당한 명분으로 채워진 나의 활동이 점점 위태롭게 느껴졌다. 다행히 아직 글을 쓸 땐 간절하고, 어떤 활동을 생각하면 가슴 뛴다.

 글을 쓰고 싶은 욕망과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을 기획하고 해내고 싶다. 그 욕망으로 기대하고 실망하며 또 간절해지는, 내 삶을 생생하게 만드는 감각을 잃지 않고 싶다. 지나버린 것에 대한 욕망 대신 오지 않은 것에 대해 갈망하는 것. 

그렇게 간절함이라는 감각을 잃지 않고, 생생한 글을 쓰며, 좋은 이들과 함께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가고 싶다.

 

일상다반사 2020. 11. 11. 06:26

연기파 배우의 산책길

 겨울이 오고 있다. 스치는 바람이 차갑고, 6시만 되어도 어둑어둑한 하늘에서 겨울이 느껴진다. 한 달에 15일만 매일 1만 걸음을 걸으면 5,000원 캐시백을 해준다는 카드에 힘입어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바람도 차갑고 어두우니 기왕이면 햇볕 좋고 밝은 낮에 걸으면 좋으련만 그게 잘 안 된다. 오늘도 6시 넘어 어둑어둑한 산책길을 걸었다.

산책할 때 음악을 듣거나 읽은 책 메모 내용을 mp3로 변환한 파일을 들으며 걷는다. 저시력인 내가 이어폰까지 끼고 어두운 산책길을 걷는 게 위태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산책하며 사람과 부딪친 일은 거의 없다. 대게는 나를 본 사람들이 피해서 갔고 나 또한 사람들이 가까이 오면 멈추거나 천천히 걸으며 주의했다. 내가 부딪칠 위험을 겪을 때는 산책 나온 어린아이 또는 강아지를 만났을 때다. 그 존재들은 나를 보고 피해 주지 않거나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기도 하니까… 그런데 오늘 산책길에서 강아지도 어린아이도 아닌 성인 남성인 듯한 사람과 왼쪽 어깨 아래를 제대로 부딪쳤다. 사실 부딪친 사람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다. 다만, 부딪친 뒤 내가 돌아서서 허리를 굽혀 미안함을 표했을 때 아무 말 없이 정적이 흐른 것 때문에 중년 남성이었을 거로 추측하는 거다. 부딪쳤을 때를 생각하면, 내가 그 사람보다 키가 크고, 어두운색 마스크를 낀 채 점퍼에 달린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있었으니 내가 좀 무섭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허리를 굽혀 미안함을 표한 뒤에도 아무 인기척이 없었는데 멀리 가버린 것 같지는 않았다.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으니까…

갑자기 무서운 느낌이 확~ 밀려왔는데, 어쩐지 그 사람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뒤돌아서 가던 길을 걷는데 자꾸 뒤에서 중년 남성이 막 소리치며 쫓아올 것만 같아 무서웠다. 발걸음을 빨리해 산책길을 벗어났다. 집 근처 산책길과 이어진 다리까지 두 번 돌면 1만 걸음을 걸을 수 있다. 1만 걸음을 채우기 위해 두 번째로 산책길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여전히 아까 그 남성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이어폰을 더 꼭 끼고 볼륨을 조금 더 크게 높이며 걸었다. 키가 있으니까 못 들은 척 지나가도 선뜻 나를 잡아 새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진작 떠났기 때문인지 나에게 화를 내며 달려드는 중년 남성은 없었다. 

 저시력인 내가 누군가와 길에서 부딪치는 일은 거의 없다. 간혹 부딪친다 해도 그건 나와 부딪친 사람이 휴대폰을 보며 걷거나 대화를 나누며 다가오다가 나를 보지 못하고 부딪친 때였다. 사람 목소리가 들리거나 눈에 들어오면 일단 천천히 걷거나 잠시 멈추니 나 때문에 사람과 부딪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누군가와 부딪치면 반사적으로 사과부터 하는데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 차원만은 아니다. 그야말로 반사적으로 사과를 한다. 솔직히 말하면, 얼른 사과해서 내 시력이 드러나지 않도록 빨리 수습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경험상 내 시력이 ‘드러나서’ 좋은 일은 별로 없었으니까…

오늘 나와 부딪친 사람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말없이 허리를 좀 굽혀 사과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한 것만으로 불쾌함이 가시지 않았을까? 밤에 길을 걷다가 부딪친 사람이 어두운 마스크와 점퍼 모자까지 뒤집어쓴 키 큰 남자라서 놀랐을까?

누군가와 부딪치는 일은 자주는 아니어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조금 강하게 부딪치는 일도 드문드문 일어나는 일이다. 다만, 어둑어둑한 시간에 부딪혀 조금 더 상대방이 조심스럽게 느껴진 것뿐이다. 그러니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난 저녁인 거다.

그럭저럭 내 시력은 적당히 드러나지 않은 듯한 저녁 산책길. 나는 어느새 몸에 스민 내 뛰어난 연기력을 생각해본다.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발휘되지만, 혼자 곰곰이 생각하면 씁쓸하고 심란한 그것….. 

집 근처 산책길을 연기파 배우가 되어 걷는다.

일상다반사 2020. 10. 5. 00:47

초조함은 있는 것도 사라지게 만든다.

“다른 모든 죄를 낳는 인간의 주된 죄 두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초조함과 무관심이다. 인간은 초조함 때문에 천국에서 쫓겨났고 무관심 때문에 거기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주된 죄가 단 한 가지라고 한다면 그것은 초조함일 것이다. 인간은 초조함 때문에 추방되었고 초조함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다.”

- 고병권, <철학자와 하녀> 중.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예상보다 시간이 길어졌고, 회의 시간에 늦을 상황이라 초조했다. 여전히 대학 병원에서 수납하고 진료받는 일은 익숙하지 않아 허둥댔다. 수납을 위해 번호표 발급 기기를 찾는데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허둥거렸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고, 회의 시간 때문에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가 우연히 무인 수납 단말기 앞에서 “카드 수납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는 분을 만났다. 분명 병원 직원이셨겠지만, 그녀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걸 알리는 표식을 내 시력으로 발견할 순 없었다. 번호표 뽑고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바로 결제할 수 있다는 말이 너무나 반가웠다. 카드를 건네주고 결제를 마쳤다.

차를 호출하고 빨리 배차되길 바라며 서성였다. 도착한 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이 회의 시작 시각이 지나고 있었다. 더 늦으면 안 된다는 조급한 마음이 초조하게 만들었다. 목적지에 도착했고,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려는데 없었다. 늘 넣어두는 곳에 당장 꺼내서 내밀어야 하는 카드가 없었다. 난감했고 당황스러웠다. 회의 장소에 도착한 분에게 급히 전화해서 결제를 대신 부탁했다. 카드를 어디서 분실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카드를 꺼낸 건 병원에서 결제할 때뿐이니 거기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회의에 지각해서 집중도 못 하고 또 허둥거렸다. 카드 분실 신고부터 하라는 말에 ARS로 분실 신고를 접수했다. 그 과정에서 안내 멘트를 다 듣지도 않고 서두르다가 끊고 다시 전화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평소였으면 하지 않았을 실수였다.

회의를 마치고 병원에 연락해서 분실물을 확인했지만, 잃어버린 카드가 들어왔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교통 카드 기능이 있는 신용 카드였는데 분실해서 버스를 못 탈 상황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재발급 신청한 카드를 받았다. 이전 카드는 카드 번호가 양각되어 있어 지갑에서 꺼낼 때 촉감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로 배송된 카드는 여느 카드와 같이 양각된 것 없이 매끈해서 불편했다. 잃어버린 카드가 더 아쉽게 느껴졌다.

“카드를 한 장만 대주십시오.”

교체 받은 카드를 지갑에 넣고 버스를 탈 때 예상 못 한 단말기 안내 멘트가 나왔다. 자리에 앉아 지갑을 뒤적이니 잃어버린 줄 알았던 번호가 양각된 카드가 다른 곳에 꽂혀있었다. 반갑고 황당하고 분실 신고하고 재발급까지 받았는데 이 카드는 쓸 수 없겠구나 싶어 안타까웠다.

그날, 왜 그렇게 나는 여러 번 허둥거렸을까…. 뭐가 그리 초조했을까…. 중요한 회의였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 자리였지만, 넉넉히 이해해줄 분들과 같이하는 회의였는데 말이다.  <철학자와 하녀>의 한 대목이 떠오른 건 아직 버리지 못한 손에 익숙한 카드를 만지며 그날 일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잘될지 어떨지 가늠하기 어려운 행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일까? 초조하다. 몇 개월 마음 쓴 행사다. 잘 안된다고 세상이 무너지거나 내가 죽고 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들인 시간이 있고 잘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마음 써준 분들이 있다.

-  내가 하는 일이 나는 아니다. 일에 대한 평가가 나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읽은 글에서 만난 메시지다.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여전히 전부 받아들이지 못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일이 아니면 나를 무엇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 찾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초조함과 조급함은 거기에서 나온다. 내가 하는 일이 나를 보여주는 것은 맞지만, 나라는 사람을 전부 보여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일에 대한 평가가 부분적으로 그 일을 한 나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 역시 일부일 뿐이다. ‘나’는 ‘일’이 아니다. 

연휴가 시작할 때 처리해야 할 일들을 적었다. 연휴가 끝나는 지금, 그 일 중 처리한 일은 없다. 연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마음을 내리누르던 일들이었다. 내일이 조금 더 바빠지겠지만, 큰일이 나는 건 아니다. 초조해할 일은 아니다.

지갑에 있는 카드도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초조함에 사로잡힌 헛손질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애쓰되 힘주지 않도록 하자. 장그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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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2020. 9. 27. 14:08

될 대로 되는 일은 없다

- 계란, 떡볶이, 라면 사리 그리고 빨랫비누. 

마트는, 생각할 물건을 정하지 않고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이다. 필요한 물건은, 계란과 빨랫비누 뿐이었지만, 점심거리가 마땅치 않아서 떡볶이를 해 먹기로 했다. 라면 사리도 넣고 치즈와 계란도 넣어서 모처럼 고급지게 먹어볼 생각이었다.

냄비에 물을 조금 넣고 떡볶이 떡을 넣은 직후 알았다. 떡볶이가 아니라 떡볶이 떡을 샀다는 걸…

어떻게든 될 거라고 반쯤 포기하는 마음으로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끓이기 시작했다. 라면 사리도 하나 넣고, 냉장고에 한참 들어있던 고추장을 찾아 몇 숟가락을 넣었다. 고추장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모른다는 걸 깨달은 순간 허둥거렸다. 일단 고추장을 퍼넣고 뚜껑을 닫은 뒤 5분 정도를 끓였다. 뚜껑을 열고 확인하니 라면 사리가 익지 않은 상태였다.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하면 안 되는 일을 다시 해버렸다. 컵으로 물을 받아 조금 더 넣고, 고추장을 다시 퍼서 넣었다. 다시 뚜껑을 덮고 또 끓였다. 불을 끄고 냄비를 열어 라면 사리를 먹었을 때 망했다는 걸 직감했다. 숟가락으로 냄비를 휘휘 저으면서 확인했다. 눌어붙은 면과 떡, 설거지도 손이 많이 갈 거라는 걸…

떡볶이 떡을 넣었을 때 레시피를 검색해봤을 수 있었다.
고추장을 더 넣지 않아도 됐고, 중간에 물을 붓지 않아도 됐다.
치즈는 넣지 않아도 됐다.
고추장을 더 넣지 않아도 됐고, 중간에 물을 붓지 않아도 됐다.

이 모든 일을 해버린 건,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떡볶이를 잘못 산 건 실수지만, 그 실수가 라면 사리와 치즈를 버리고 냄비에 떡과 사리가 눌어붙도록 만든 건 내 마음 때문이다.

될 대로 되라고 하는 일치고 잘 되는 일은 없다. <더 파이팅>에서 민태가 자포자기한 채 럭키 펀치를 뻗겠다고 마음먹을 때 그의 아버지는 말했다. 자포자기한 마음이 아니라 쓰러뜨리겠다는 의지를 담아 뻗는 펀치가 럭키 펀치가 된다고…

의지를 싣지 않고 될 대로 되라고 하는 일은 실패한다. 일이 완전히 망하기 전까지 몇 번의 순간이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덜 망하거나 성공하게 만들 수 있는 순간이다.

떡볶이는 망쳤지만, 그 덕에 글을 하나 쓸 수 있었고 교훈도 얻었으니 꼭 나쁜 일만은 아닌가?

일요일이니 짜파게티 요리사가 되었으면 좋았을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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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2020. 7. 27. 22:56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www.youtube.com/watch?v=CEd2FZkB3FU 

 

샤워하며 듣고 있던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분명 들어본 노랜데 가수 목소리가 낯설었다. 슬의생 OST라는 건 음악 검색을 한 뒤에 알게 됐다.  플레이 리스트에 추가하고 연이어 듣는다. 

 몇 사람의 얼굴이 스친다. 좋아한다고 말도 못했던 얼굴들. 시간을 되돌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이 노랫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 이 노래를 계속 듣고 있는 건 듣고 싶은 말이기 때문이겠지.

 노래는 이렇게 종종 마음을 붙들어 옛 기억으로 끌어가곤 한다. 
마음처럼 촉촉한 날이다.www.youtube.com/watch?v=wTe1ljdLt1E

일상다반사 2016. 8. 28. 09:45

드라마를 통한 간접 경험.

미국 드라마 Law and Order을 보고 있다. 성폭력 사건 전담반이 무대가 되는 드라마로 굉장히 재밌게 보고 있다. 굉장히 재밌게 보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예민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도 하고 각 인물들에 대한 현실감 있는 묘사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 경험들을 직접 해보기 어려운 환경 조건에서 자랐기 때문이기도 하고 매우 예민하고 힘든 감정을 감당하지 않으면서 사건과 의미들을 바라보며 생각해볼 수 있기도 해서 드라마가 좋다. 어쩌면 외국 드라마여서 조금 더 현실과 거리를 둘 수 있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지도...


미드,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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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2016. 1. 1. 22:24

2016년 목표들.

1월 1일이다.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이유는 없는, 그저 어제에서 오늘로 하루 지난 것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어떤 일의 계기로 삼는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 일기쓰기

- 굿모닝팝스 본방사수

- 책 읽기


이 정도가 작년 그러니까 2015년에 매일매일 하겠다고 새웠던 목표였다. 일기쓰기가 가장 잘 지켜진 편이고 굿모닝팝스 본방사수도 그런대로 출근과 연결되며 절반 정도는 지킨 편이다. 책 읽기가 가장 지켜지지 못한 목표였는데 하루에 독서 시간을 정해두는 것 외에 좀더 구체적인 계획과 할 일들을 만드는 게 필요한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책의 목차를 보고 정해놓은 기간동안 읽기 위해 필요한 읽을 분량 나누기를 해보기로 했다.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우석훈 씨가 쓴 나와 너의 사회과학을 먼저 읽기로 했다.


읽은 책들은 블로그에 게시글을 하나 만들고 거기에 기록을 해둬야겠다. 읽은 책들은 꼭 독후감을 쓰는 것까지를 목표로...


2016년, 이 목표들만 잘 지켜도 꽤나 풍족한 한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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