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일상에 해당되는 글 2건
- 2021.06.13 낯선 공간에서의 새로운 활력
- 2021.06.12 키오스크 벽을 넘어 동네 스터디 카페 이용 시작
글
낯선 공간에서의 새로운 활력
오전 9시, 정기권을 결제한 스터디 카페 내 자리. 좌석 번호 51번, 벽을 등지고 가장 구석에 있는 위치다. 전사하느라 타이핑을 좀 시끄럽게 하는 편이라 고른 위치이고, 다른 사람이 내 노트북 모니터를 볼 수 없는 자리이기도 하다. 일요일 아침, 이 자리에 앉기 위해 집을 나섰다. 정기권을 끊지 않았다면 집에서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뒹굴뒹굴했을 시간이지만, 결제한 금액만큼 자리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동기가 되어 집을 나올 수 있었다.
삑 소리도 못 내는 키오스크에서 4주 동안 내 자리가 된 좌석 번호를 찍고 휴대폰 번호를 입력한 뒤 들어왔다. 이곳은 크게 세 공간으로 나눠 운영되는데 다수가 모여 이용할 수 있는 스터디룸과 노트북으로 타이핑하며 쓸 수 있는 내 자리가 위치한 오픈된 공간 그리고 기침만 해도 눈총이 쏟아질 것 같은 조용한 공간이 있다.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가 무료인 커피 머신이 있고, 정수기가 있고, 복합기와 노트북이 한 대씩 놓여 있다.
문을 열고 들어오니 아무도 없다. 일요일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시간이 이르기 때문인지 알 순 없지만, 아무도 없는 공간에 노트북을 펼치고 앉아 막 뽑은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미생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장백기가 어린 시절 매일 아침 가게 앞을 물청소하시던 문방구 아저씨를 떠올리는 장면이다. 이 시간, 이 공간이 좋아질 거 같다. 잔잔히 흐르는 음악, 편히 마실 수 있는 커피, 이런 건 집에도 있다. 집에 없는 건 다른 존재들이다. 이곳이 좋은 이유는 누군가와 한 공간에 같이 있다는, ‘사람’을 의식하게 된다는 감각 때문이다. 아직 아무도 없는 이 시간이 적당히 설레는 이유는 반드시 누군가는 이 공간에 함께 있게 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일요일이라 아무도 안 올지도 모르지만, 집에 있었다면 0%인 누군가와 마주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적어도 이 공간에선 0%가 아니니까… 집에서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건, 혼자라는 감각이 압도했기 때문일까? 그 압박감에서 벗어나려 침대 속으로 도망치기 때문일까? 정확히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새로운 공간에서 다른 감각이 느껴지긴 한다. 조금 더 가볍게 뭔가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거면 됐다.
차분히 오늘 할 일을 시작해보자.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키오스크 벽을 넘어 동네 스터디 카페 이용 시작 (0) | 2021.06.12 |
---|---|
드라마 스위트홈 인상 깊은 한마디 (0) | 2021.03.03 |
욕망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 (0) | 2020.11.14 |
연기파 배우의 산책길 (0) | 2020.11.11 |
초조함은 있는 것도 사라지게 만든다. (0) | 2020.10.05 |
설정
트랙백
댓글
글
키오스크 벽을 넘어 동네 스터디 카페 이용 시작
이사한 후 아쉬운 점은 근처에 도서관이 없다는 거였다. 가까운 곳에 여대가 있긴 하지만, 낯선 곳에 가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내게 여대 도서관 이용이 가능한지 찾아가 보는 일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곳곳에 생기고 있는 스터디 카페가 우리 동네에도 생겼다는 걸 알게 됐다.
지인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이동하던 중 ‘어, 여기 스터디 카페 생겼네요?’라는 말에 귀가 번쩍 뛰었다. 저녁을 먹고 함께 둘러보기로 했다. 몇 주 전, 회의 때문에 스터디 카페에 갔던 기억이 있어 출입할 때 키오스크를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 봐 좀 걱정이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입구에는 ‘삑’소리도 못 내는 키오스크가 버티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버튼이 좀 크다는 것과 대충 위치를 외우면 어찌어찌 쓸 수 있을 거 같다는 거였다…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니 노트북 챙겨서 일하러 오기 딱 좋게 생겼다. 커피도 무료로 제공되고 있었고, 사람도 많지 않아 딱 맞았다. 결정적으로 2시간에 3,000원이라는 이용료가 저렴하게 느껴졌다. 어제저녁, 어둑어둑한 시간에 스터디 카페 4시간짜리 이용권을 끊고 처음 이용해봤다. 몇 번 헛손질을 했지만, 그 덕에 대강 사용법을 익힐 수 있었다. 모처럼 책도 읽고 밀린 일도 하면서 10시가 넘은 시간 카페를 나왔다. 뿌듯한 느낌이었다. 정기 이용권이 있었는데 나올 때 9주짜리 정기 이용권을 끊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다음 날 결제하기로 하고 나왔다.
그렇게 밝은 오늘, 충전기와 노트북을 챙겨 스터디 카페에 다시 왔다. 정기 결제권을 끊으려 키오스크 앞에 섰고, 어제 익힌대로 결제를 시도했다. 어찌 된 일인지 예상하지 못한 팝업창이 하나 뜨면서 결제가 곧바로 되질 않았다. 무슨 팝업창인지 휴대폰 확대기 기능을 실행해서 안 맞는 초점 겨우겨우 맞춰가며 뭔가 서명하라는 걸 알았다. 왜 이런 창이 뜨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몇 번 더 같은 시도를 반복했다. 루틴대로 출력하는 키오스크가 다른 메시지를 내보낼 리 없었다. 결국 난 서명하고 결제하는 데 성공했고 그제야 결제 금액이 5만 원을 초과해서 서명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냈다. 마트에서도 5만 원 이상 결제하면 서명을 요구하니까…
키오스크에서 좌석을 선택하고 결제하기까지 과정을 위치와 함께 대강 외우는 일은 비교적 간단한 일이다. 화면 읽기 프로그램이 변변치 않았던 MS-DOS 운영 체제를 사용하던 시절 화면 읽기 프로그램이 실행되지도 않는 바이오스 설정 과정을 ‘삐’ 소리가 나면 키보드 키를 놓고 화살표를 아래로 몇 번 내린 다음 엔터 한 번 다시 화살표를 몇 번 움직이고 엔터 한 번 또 화살표를… 이런 식으로 복잡한 과정을 익히며 컴퓨터를 사용했던 때가 생각났다. 그에 비하면 ‘삑’소리도 못 내는 키오스크에서 정기권 결제하는 일 따위는 껌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해진 대로 움직이며 어찌어찌 실행하며 쓰는 나 같은 이에게 5만 원 넘었다고 예상에 없는 팝업창 따위가 뜨는 때면, “먼저 하세요.”를 거듭 말하며 등 뒤에 사람이 안 오나 신경을 곤두세우는, 익숙해질 수 없는 피곤하고 짜증스러운 일이 된다.
우선은 한 달이다. 4주, 매일 저녁과 주말을 이 스터디 카페에서 꼬박꼬박 보낼 수 있다면, 다음엔 8주를 결제할 거다. 익숙하고 편안하게 침대에 눕게 되는 집을 벗어나니 뭘 하긴 하게 된다. 4주 정기 이용권 결제한 돈은 뭐라도 하는 시간으로 남는 셈 치기로 한다. 모처럼 이렇게 글도 하나 썼으니 확실히 첫날부터 수지맞는 일인 셈인가…^^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낯선 공간에서의 새로운 활력 (0) | 2021.06.13 |
---|---|
드라마 스위트홈 인상 깊은 한마디 (0) | 2021.03.03 |
욕망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 (0) | 2020.11.14 |
연기파 배우의 산책길 (0) | 2020.11.11 |
초조함은 있는 것도 사라지게 만든다. (0) | 2020.10.05 |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