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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처럼
비가 그치고 좀 습한 날이다. 반소매 차림으로 나가도 춥지 않은 날씨였다. 이어폰을 끼고 산책길을 걷는데 삼삼오오 사람들이 꽤 보였다. 분명 네 발 자전거가 틀림없는 시끄럽게 구르는 자전거 바퀴 소리가 들렸다. 그 뒤를 소리 없이 따라가는 두 발 자전거도 스쳐 갔다.
여느 때처럼 집 앞 분식집에서 돌솥비빔밥을 먹고 마저 한 바퀴를 걸었다. 다리에서 보이는 나무를 한 컷 담았다. 산책길을 걷는데 할머니 한 분이 나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가셨다. 아마도 휴대폰을 보고 걸으셨던 모양이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 노동절 하루 전날 와주셔서 긴 연휴를 즐기게 됐다. 어린이날이 화요일이라 징검다리 연휴가 되었다. 일요일이 저무는데 쫓기는 느낌이 덜한 이유다.
생활 방역 체계로 넘어가는 걸 발표하느니 마느니 하는 모양이다. 산책이라도 해야 덜 답답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매일 발표되는 확진자 수가 줄고 광주지역 확진자가 없기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산책길에서 자전거 바퀴 구르는 소리를 듣고 스치는 가족들을 본 건 좀 됐다.
쓰고 다니던 마스크를 빨아서 건조대에 널었다. 내일 면 마스크를 하나 더 살 생각이다. 번갈아 가며 빨고, 나갈 때마다 마스크를 챙기는 일이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 되는 시간.
생활 방역이라는 건 그렇게 마스크를 낀 낯선 차림이 여느 옷차림이 되는 걸 의미하겠지.. 그 정도라면, 괜찮다. 나갈 때 마스크를 챙기고, 손을 자주 씻고, 세탁할 때 마스크도 함께 빠는 정도는 낯설긴 해도 불편하지는 않은 여느 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지역을 비난하고 그 지역 사람들을 구분 지으며 배제하는 댓글을 보는 일은 갈수록 잦아져도 익숙해지기 어렵다.
여느 때 같은 일상 풍경에 구르는 자전거 바퀴 소리와 스치는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 늘 그곳에 있는 나무와 아직 질리지 않은 돌솥비빔밥을 파는 분식집 같은 것들만 있으면 좋겠다. 상처 입히는 댓글, 차별과 혐오를 토해내는 그런 댓글은 줄어드는 확진자 수처럼 사라져가면 좋겠다.
인터넷 댓글이 여느 날처럼 산책길에서 스친 사람들 모습처럼 좀 평온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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