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2020. 9. 27. 14:08

될 대로 되는 일은 없다

- 계란, 떡볶이, 라면 사리 그리고 빨랫비누. 

마트는, 생각할 물건을 정하지 않고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이다. 필요한 물건은, 계란과 빨랫비누 뿐이었지만, 점심거리가 마땅치 않아서 떡볶이를 해 먹기로 했다. 라면 사리도 넣고 치즈와 계란도 넣어서 모처럼 고급지게 먹어볼 생각이었다.

냄비에 물을 조금 넣고 떡볶이 떡을 넣은 직후 알았다. 떡볶이가 아니라 떡볶이 떡을 샀다는 걸…

어떻게든 될 거라고 반쯤 포기하는 마음으로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끓이기 시작했다. 라면 사리도 하나 넣고, 냉장고에 한참 들어있던 고추장을 찾아 몇 숟가락을 넣었다. 고추장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모른다는 걸 깨달은 순간 허둥거렸다. 일단 고추장을 퍼넣고 뚜껑을 닫은 뒤 5분 정도를 끓였다. 뚜껑을 열고 확인하니 라면 사리가 익지 않은 상태였다.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하면 안 되는 일을 다시 해버렸다. 컵으로 물을 받아 조금 더 넣고, 고추장을 다시 퍼서 넣었다. 다시 뚜껑을 덮고 또 끓였다. 불을 끄고 냄비를 열어 라면 사리를 먹었을 때 망했다는 걸 직감했다. 숟가락으로 냄비를 휘휘 저으면서 확인했다. 눌어붙은 면과 떡, 설거지도 손이 많이 갈 거라는 걸…

떡볶이 떡을 넣었을 때 레시피를 검색해봤을 수 있었다.
고추장을 더 넣지 않아도 됐고, 중간에 물을 붓지 않아도 됐다.
치즈는 넣지 않아도 됐다.
고추장을 더 넣지 않아도 됐고, 중간에 물을 붓지 않아도 됐다.

이 모든 일을 해버린 건,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떡볶이를 잘못 산 건 실수지만, 그 실수가 라면 사리와 치즈를 버리고 냄비에 떡과 사리가 눌어붙도록 만든 건 내 마음 때문이다.

될 대로 되라고 하는 일치고 잘 되는 일은 없다. <더 파이팅>에서 민태가 자포자기한 채 럭키 펀치를 뻗겠다고 마음먹을 때 그의 아버지는 말했다. 자포자기한 마음이 아니라 쓰러뜨리겠다는 의지를 담아 뻗는 펀치가 럭키 펀치가 된다고…

의지를 싣지 않고 될 대로 되라고 하는 일은 실패한다. 일이 완전히 망하기 전까지 몇 번의 순간이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덜 망하거나 성공하게 만들 수 있는 순간이다.

떡볶이는 망쳤지만, 그 덕에 글을 하나 쓸 수 있었고 교훈도 얻었으니 꼭 나쁜 일만은 아닌가?

일요일이니 짜파게티 요리사가 되었으면 좋았을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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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2020. 7. 27. 22:56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www.youtube.com/watch?v=CEd2FZkB3FU 

 

샤워하며 듣고 있던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분명 들어본 노랜데 가수 목소리가 낯설었다. 슬의생 OST라는 건 음악 검색을 한 뒤에 알게 됐다.  플레이 리스트에 추가하고 연이어 듣는다. 

 몇 사람의 얼굴이 스친다. 좋아한다고 말도 못했던 얼굴들. 시간을 되돌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이 노랫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 이 노래를 계속 듣고 있는 건 듣고 싶은 말이기 때문이겠지.

 노래는 이렇게 종종 마음을 붙들어 옛 기억으로 끌어가곤 한다. 
마음처럼 촉촉한 날이다.www.youtube.com/watch?v=wTe1ljdLt1E

씁쓸한 친절함

어느 학교에 계세요 쌩님?”

 ‘우리’를 전제로 한 친근함은, ‘우리’가 아닌 내게 씁쓸하게 남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예정된 일정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 오늘 아침 다음 주에 예정된 일정 조정을 위해 선생님 한 분과 통화했다. 일정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2학기에 다시 날을 잡기로 했다. 밝은 목소리로 부장 교사와 바로 대화를 나누며 날짜와 시간을 정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잘 만날 수 있을 것 같이 느껴졌다.

 9월에 다시 만나자는 말과 함께 통화를 마치려고 할 때, ‘어느 학교에서 근무하세요? 생님?”이라는 질문을 받지 않았다면 분명 편안한 마음으로 통화를 마쳤을 거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 왜 나를 교사라고 생각했을까? 
- 훈훈한 분위기로 통화할 수 있었던 건 내가 교사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 교사가 아니라고 말한 뒤 통화를 마쳤는데,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 9월 조정한 일정대로 일은 잘 진행될 수 있을까?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밀려왔다. ‘근데, 전공이 뭐예요?’, ‘학번이 어떻게 되세요?’ 같은 ‘우리’를 전제로 한 질문이 얼마나 당혹스러울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우리’이고 싶은 욕망은 의식하지 못한 채 툭툭 불거진다.

 학연, 지연, 혈연 그도 아니면 흡연으로라도 ‘우리’를 만들고 싶은 모습들.

 씁쓸함이 남지 않도록 ‘우리’로 엮으려는 마음을 조심해야겠다. 외롭거나 두려워 혼자이고 싶지 않을 때는 더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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